행복한 라짜로 리뷰 — 착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장 순수했기 때문이었다
〈행복한 라짜로〉는 이상한 영화다. 하지만 그 ‘이상함’이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 오래 남는다.
이 영화는 착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본질, 계급, 착함이라는 감정의 무게**를 다룬 작품이다. 라짜로의 미소는 순수하지만, 그 순수는 세상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며 묻는다.
“진짜 착함이란 무엇일까?” “착함은 세상을 구원할까, 아니면 더 다치게 할까?”
🕊 라짜로 —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인간, 혹은 너무 순수해서 위험한 인간
라짜로는 착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미덕의 상징’으로 만들지 않는다. 라짜로의 착함은 계산된 친절도, 의무감도 아니다. 그는 그냥 **본래의 인간이 가진 순수함 그대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세상이 그의 순수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착함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누군가에겐 부담이 되며, 누군가에겐 감시와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관객은 라짜로를 보며 안다. “착한 사람은 손해를 본다”는 슬픈 진실을.
🏞 1부 — 농장이라는 감옥, 순수함의 착취
영화의 초반부에서 라짜로와 사람들은 마치 중세시대 같은 농장에서 일한다. 계약 위반이고 착취가 분명함에도 그들은 “이게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라짜로는 묵묵히 일하고, 불평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손을 내민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친절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그의 ‘순종성’을 이용한다.
여기서 영화는 큰 질문을 던진다.
“착함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때에도 선일까?”
이 질문은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를 관통한다.
🚂 2부 — 도시의 시간, 변하지 않은 사람과 변해버린 세상
영화의 절반을 넘기면 갑자기 **시간의 흐름이 왜곡된다.** 라짜로는 오래된 농장 시절의 모습 그대로 깨어나고, 모든 사람은 늙었고, 세상은 바뀌었다.
이 부분이 라짜로가 판타지적 존재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는 늙지 않고, 변하지 않고, 세월조차 그를 바꾸지 못한다.
반면, 세상은 달라졌다. 착취 구조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고, 사람들은 도시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가난과 고립을 마주한다.
결국, 착함은 세월을 초월하지만 사회의 구조는 착함을 전혀 보호하지 않는다.
🍞 라짜로가 빵을 얻으러 간 이유 —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라짜로는 늘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눠준다. 그건 의무가 아니다. 그저 “사람은 먹어야 산다”는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단순한 선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의심하고, 배척하고, 공격한다.
이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라짜로가 은행에서 빵을 구걸할 때다. 그는 단지 굶주린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현실은 그를 범죄자로 몰아간다.
이 장면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착함조차 ‘합법적이어야 하는’ 시대에 라짜로는 너무 오래된 인간이었다.
💔 라스트 씬 해석 — 착한 사람이 사라진 세계
::contentReference[oaicite:1]{index=1}영화의 마지막, 라짜로는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몰려가다 결국 쓰러진다.
라짜로의 죽음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다. 그건 **“착함이 존재할 수 없는 세계의 현실”**을 상징한다.
라짜로는 세월도 넘고, 착취도 버티고, 사람들의 무관심도 견뎠다. 하지만 결국 그는 세상이 만든 폭력 앞에서 쓰러진다.
그럼에도 영화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라짜로가 죽은 뒤, 카메라는 바람 소리와 함께 ‘순수함이 남긴 흔적’을 잠시 비춘다.
그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착함은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기억하는 한, 순수함은 계속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간다.
📊 영화 정보
- 감독: 알리체 로르바커 (Alice Rohrwacher)
- 주연: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
- 장르: 드라마, 판타지, 사회적 리얼리즘
- 국가: 이탈리아
- 개봉: 2018년
- 수상: 칸 영화제 각본상
💬 명대사
- “사람들은 착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이용하기는 좋아하지만.”
- “너무 착하면 세상은 널 먹어버려.”
- “그는 항상 웃고 있었어. 마치 세상이 아직도 좋다는 듯이.”
💡 총평 — ‘착함’이라는 가장 오래된 능력을 잃어버린 시대
〈행복한 라짜로〉는 이상한 영화이지만 그 이상함이 우리를 깊게 찌른다.
라짜로는 너무 착해서 불행해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의 순수함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착함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순수함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인가?”
현대 사회는 착함보다 효율을, 순수함보다 이익을, 공동체보다 개인의 생존을 중요시한다.
그 속에서 라짜로 같은 인간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라져버린 인간성의 상징’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프고, 그래서 더 오래 남고, 그래서 꼭 한 번은 봐야 하는 영화다.